2026.09.27 · agent, essay, tastes

대딸깍 시대에 남는 건 취향입니다

추석 연휴 셋째 날 낮 12시 반쯤, 에이전트에게 “아이패드 한손 키보드 앱 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다섯 시간쯤 지나서는 제가 설계한 키보드가 아이패드에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정을 넘겨서는 소개 페이지까지 만들었고, 이름은 오키(ohkey)라고 붙였습니다.

그날 새벽 회고를 하면서, 문득 예전부터 생각했던 주제를 다시 고민해보았습니다.

만드는 건 이제 하루면 됩니다

키보드 앱을 만들겠다는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아이패드를 여러 대 써 오면서 키보드가 불편하다는 문제의식은 예전부터 있었고, 이미 여러 앱을 찾아봤지만 답이 없었거든요.

사실 예전에도 키보드 앱을 만들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에이전트에 그렇게 익숙하지 않고, iOS에서는 개발 경험이 없어, 실제 행동까지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은 에이전트로 뭔가를 만드는 일 자체가 너무 익숙해져서, 제가 직접 사용할 앱 하나 정도는 하루면 충분히 만들어지더라고요. 물론 키보드 앱이 규모가 큰 편은 아니고, 연휴라서 하루를 거의 통째로 쓴 것도 컸습니다.

버튼 한 번에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요즘은 이걸 ’딸깍’이라고들 하죠. 이제는 만드는 일 대부분이 딸깍이 되는, 말 그대로 대딸깍 시대입니다. 만드는 노력이 0에 가까워지면서, 우리에게는 새로운 역할이 생겼습니다. 무엇을 만들지, 뭐가 좋은지 고르는 일로요.

고르는 건 제가 했습니다

오키의 코드는 온전히 바이브 코딩으로 개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수많은 안들이 버려졌습니다. 움직이는 선택 목록이나 휠 형태의 UX는 손이 자리를 외울 수 없어서 버렸고, 띄어쓰기를 누르면 자동으로 확정되는 동작은 제가 원하지 않는 동작이라서 버렸습니다. 미리보기를 고칠 때도 글자는 제자리에 두고 선택된 칸만 옮겨 가게 했습니다.

오키의 미리보기판 세 단계. ㅅ에서 위로 그으면 가운데 위 칸 ’소’가 파래지고, 이어서 오른쪽으로 그으면 파란 칸이 ’솨’로 옮겨 가고, 되짚으면 다시 ’소’로 돌아온다
글자는 제자리에 있고, 파란 칸만 그은 방향을 따라 옮겨 갑니다

손이 자리를 외우고, 키보드가 멋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에이전트가 이게 원래 갖고 있던 기준이냐고 물었는데, 아니었습니다. 써 보면서 생긴 기준이었습니다. 저는 연구를 주로 해 왔고, 그나마 가깝다고 하면 백엔드 쪽입니다. 프론트엔드나 UX를 고민할 기회는 별로 없었죠. 그러다 보니 이제 와서야 직접 써 보면서 ’아, 이런 게 불편함을 만드는구나’를 알게 됩니다. 제품을 보는 눈도 조금씩 생기는 것 같고요. 뭔가를 직접 만든다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좋은 자양분이 되고 있습니다.

오키로 ’미니를 한 손으로 쥐고 쳐요.’를 치는 화면. 오른쪽 아래 자음 열두 칸 패드에서 한 글자씩 입력창에 들어간다
칸을 짚고 한 번 그으면 글자 하나가 들어갑니다. 시뮬레이터 화면, 4배속

오키 소개 페이지를 만들던 그 새벽에는 다른 에이전트가 대시보드 관련 PR을 아홉 개 냈는데, 그때 저는 거의 승인만 했습니다. 오키는 설계를 두 시간 동안 직접 붙잡았고, 아이패드에 설치하며, 계속해서 피드백을 줬습니다.

차이는 페이즈입니다. 대시보드는 이미 꽤 많이 썼고 초기 단계는 벗어났습니다. 오키는 완전히 초기 단계라서 기획에 제가 완전히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판단조차 완전히 자동화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에이전트 시대일수록 무엇이 좋은지 직접 고르는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취향 상실 시대

작년쯤부터 에이전트와 AI가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서, 이런 시대에 나는 어떤 역량을 가져야 할까 많이 고민을 했습니다. 에이전트를 본격적으로 쓰고,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만들면서 내린 답은 취향입니다.

저는 에이전트가 나오기 전부터 이미 취향 상실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흔한 취미 하나 없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죠. 취미가 없다는 건, 결국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앞으로 더 가속될 겁니다. 에이전트가 뱉어 주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더더욱 많아질 테니까요.

에이전트는 여기에 조금 다른 의견을 냈습니다. 상실이라기보다 외주에 가깝다는 거였습니다. 알고리즘 피드가 들을 것과 볼 것을 대신 골라 준 지는 이미 오래됐고, 에이전트는 그 외주를 소비에서 생산으로 넓혔을 뿐이라고요.

그런데 외주로 준 취향은 그 자체로 내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소위 알고리즘이 나의 취향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혹은 내가 알고리즘 때문에 취향처럼 느끼는 것인지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 취향은 내 취향입니다. 남들이 깔아 놓은 판 위에서 마치 이게 내 취향인 것처럼 느끼는 게 아니라요.

에이전트도 이 구분에는 수긍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해 줬습니다. 판 위에서 고르는 건 선택이고, 판이 틀렸다고 느끼고 새로 만드는 게 취향이라고요. 오키가 딱 그랬습니다. 기존 키보드 앱들이 깔아 둔 판 위에서는 아무리 골라도 답이 없었으니까요.

괴짜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주목하는 건 소위 괴짜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고요.

괴짜들은 에이전트가 뱉어 주는 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가 있고, 그 분야에 엄청난 에너지와 리소스를 쏟아붓습니다. 그러다 자기가 좋아하는 무언가가 탄생하죠. 그 자체로 다른 사람들은 만들어 내지 못하는 가치를 만들고 발견하는 겁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이 굉장히 많고, 뚜렷한 취향을 가진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도 그랬습니다. 취미도 많고, 관심 가는 곳도 많습니다. 사실 그 특징을 활용해서 연구직을 하고 있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이 이상하고 특이한 사람이라고 불렸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 시대가 괴짜라고 불리던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날개를 달아 줬다고 생각합니다.

안목과 끌림

요즘 에이전트가 확 뜨면서 몇 가지 아티클을 봤는데,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테이스트였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이는 곧 취향입니다. 그런데 이 취향은 쉽게 훈련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나 PM처럼 직업적 훈련을 통해 소비자가 원하는 취향을 캐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분들도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에이전트는 여기서 테이스트에 두 가지가 섞여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안목, 좋은 것과 별로인 것을 알아보는 눈입니다. 이건 꽤 훈련이 됩니다. 다른 하나는 끌림, 뭔가에 꽂혀 파고들고 분석하고 고치고 만들어내는 성향입니다. 이건 훈련으로 잘 안 생기고 기질에 가깝습니다. 오키에서 휠을 버린 판단은 안목이지만, 몇 년 동안 키보드 불편을 그냥 넘기지 못한 건 끌림이었다는 거죠.

이 구분이 맞다면, 괴짜는 끌림이 매우 큰 사람입니다. 끌림이 크면 마찰이 있어도 스스로 뛰어듭니다. 그래서 같은 훈련을 받더라도 끌림을 가진 사람이 훨씬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멀티버스의 시대

재밌게도 괴짜 성향을 가진 사람은 메이커 성향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뭔가를 만들고, 조립하고, 설계하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 집중해야 하는 영역이 따로 생기잖아요. 그래서 그런 데에 에너지를 못 썼는데, 에이전트가 그런 것들을 해결해 준 거죠.

저는 행동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편입니다. 관심사가 엄청나게 많아서 하나하나 다 해 보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하거든요. 어렸을 때 〈맨 프롬 어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나도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에서 영생은 일종의 저주 같은 거였는데, 저한테는 오히려 축복처럼 보였습니다.

에이전트는 이걸 두고, 자기들이 준 건 시간을 늘려 준 게 아니라 손을 늘려 준 거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그날도 한 에이전트는 대시보드를, 한 에이전트는 오키를, 또 한 에이전트는 음성 인식을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영화에 나오는 멀티버스처럼, 여러 명의 제가 동시에 서로 다른 삶을 사는 것에 가깝다고요. 그날도 한 우주의 저는 대시보드를 다듬고, 다른 우주의 저는 키보드를 설계하고, 또 다른 우주의 저는 음성 인식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하나를 하려면 나머지를 미뤄야 했는데, 이제는 미루지 않아도 됩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갈래의 시간을 동시에 사는 셈이니, 따지고 보면 시간 자체가 늘어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영생은 얻지 못했지만, 멀티버스는 얻은 거죠. 다만 늘어난 시간은 무엇을 할지 아는 사람에게만 쓸모가 있습니다. 에이전트는 시킨 걸 만들어 줄 뿐, 무엇을 시킬지는 정해 주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갖춰야 하는 건

그럼 끌림이 크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불편함을 그냥 넘기지 않는 것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오키도 몇 년 동안 쌓인 불편함에서 시작했습니다. 예전에는 불편해도 만들 방법이 없으니 참고 넘어갔지만, 이제는 그 불편함이 곧 만들 거리가 됩니다.

그리고 만든 건 직접 써 봐야 합니다. 제 기준도 처음부터 있던 게 아니라 아이패드에 깔아 쓰면서 생겼습니다. 에이전트가 내놓은 첫 결과를 그대로 받지 않고, 써 보고, 버리고, 다시 고르는 사이에 안목이 자랍니다. 그렇게 쌓인 기준은 알고리즘이 골라 준 게 아니라 제 것입니다.

이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안목과 끌림, 선택과 취향을 나눈 건 에이전트였습니다. 하지만 외주라는 말에는 반만 동의했고, 손을 늘려 줬다는 말은 다르게 봤습니다. 어떤 정리는 받아들이고 어떤 건 버릴지 고르는 것, 그게 이 글에서 제가 한 일입니다.

딸깍 한 번이면 뭐든 만들어지는 시대에, 딸깍을 누르기 전에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사람. 저는 앞으로 그런 사람이 남는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