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5 · consulting

밥 한 끼로 시작한 첫 컨설팅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연락을 한 통 받았습니다. 혹시 나 AI 좀 알려줄 수 있어? 유튜브를 봐도 처음 보는 용어랑 개념이 너무 많아서 따라하기 힘들어. 내가 돈 조금 줄게.

꽤 흥미로운 제안이었습니다. 에이전트를 한참 쓰고 있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거나 조언을 하는 건 생각지 못했거든요. 저도 처음인데 돈을 받기는 좀 그렇고 밥 한 끼 사라는 말과 함께 수락했습니다.

한 시간 뒤에 나온 말

약속을 잡고 한 카페에서 만났습니다. 시작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에이전트, 프롬프트, 컨텍스트, 스킬 등 전반적인 기초 용어와 개념의 부재로 조금만 실전으로 들어가면 쫓아가기 어려운 게 문제였습니다. 지난 첫 연락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기 때문에 기초 개념 설명을 위한 자료를 준비해 왔습니다. 자료를 보면서 한 시간가량 설명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한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하나도 없네. 일을 시킬 때는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매뉴얼을 정리해 놓는 게 당연하잖아.

저는 이 말을 듣고 아 이 친구가 이제 문을 열고 들어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제가 주변에 자주 말하고 다니는 용어의 함정에서 스스로 빠져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에이전트와 일하는 것은 사람과 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매니저가 되어야 하고 함께 일하는 시스템의 설계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죠. 그렇다고 공부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일을 잘 시키고 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는 않으니까요.

암묵지에서 형식지로

기초 개념을 다루고 난 후에는 클로드 코워크를 셋업해 보고 가지고 있는 문제 하나를 처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 친구는 견적서 검토가 잦고 발주 등 숫자가 틀리는 것에 민감한 업무를 주로 다루었습니다. 억 단위 금액이 오가는 자리라, 숫자 하나 틀리면 손실이 그대로 납니다. 문서들 자체가 기밀 사항들을 다루고 있었지만 다행히 회사에서 엔터프라이즈 플랜으로 제공받고 있어서 이를 활용하여 진행했습니다.

가장 먼저 견적서 검토와 발주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암묵지로 남아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부터 정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견적서 검토를 할 때는 어떤 부분들을 검토해야 하고, 발주 등에 있어서 각 숫자는 어떻게 검증하는지 등을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이를 직접 정리하는 게 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나에게 질답을 반복하는 것은 사고의 한계에 갇히는 문제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인터뷰 방식을 채택하였고, 인터뷰를 위해서는 grill-me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grill-me 스킬을 사용하면 인터뷰어와 인터뷰이가 분리되면서 좀 더 꼼꼼하게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에서는 어떤 항목이 결정 가능하고 어떤 항목이 판단의 경계에 있는지, 그리고 심각도를 어떻게 측정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들이 오갔습니다. 인터뷰를 통해서 만들어진 문서를 기반으로 스킬(AI가 읽는 업무 매뉴얼)을 만들었습니다. 스킬을 생성할 때는 내장된 skill-creator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인터뷰를 통해서 만들어둔 문서가 있기 때문에 스킬을 쉽게 생성할 수 있었습니다.

위 과정을 거쳐서 지인은 첫 자기만의 스킬을 가지게 되었고, 몇 가지 데이터로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해보았습니다. 일부 다듬어야 할 부분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목표했던 것들은 달성할 수 있게 되었죠. 사실 그 날의 결과물이 스킬로 나오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스킬을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모르는 길을 계속 찾아가는 것보다, 길을 잘 아는 가이드와 함께 걸어보면서 주변 지형을 익히면, 다음번에는 혼자서 걷는 게 더욱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밥 한 끼에서 시작된 일

약 2시간에 걸친 교육을 끝내고, 지인과 저녁 식사를 가졌습니다. 교육에 대한 후기도 이 때 좀 더 들을 수 있었죠. “모르는 영역이라서 생겼던 막연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빌미로 장사하는 사람들 속에서 진짜 정보를 찾는 게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한번 경험해보고 나니 두려움은 없어졌고,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더 고민해보게 되었다. 오늘 배운 것을 다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모르는 것을 찾아보며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후기를 들었습니다.

우연히 가지게 되었던 첫 컨설팅 경험이었지만, 이 일이 저에게는 꽤 중요한 결정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내가 가진 역량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겠구나. 지금 시기에 나의 역량을 발휘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날 이후 본격적인 컨설팅 사업을 결심하고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AI 도입에 어려움이 있으신가요? 그렇다면 컨설팅을 한 번 받아보는 것도 고민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운동을 배울 때, “PT 정도는 한번 받아보면 좋아”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받아보면 그 허들이 훨씬 빠르게 무너질 것입니다.